긍정의 힘? 개뿔!


 긍정은 좋은 것이다. 여기에 반대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긍정은 좋은 것으로, 부정은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 서점에서 '긍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300여권의 책이 검색된다. 그중 절반 가량이 자기계발서이다. 긍정적인 아이로 키워준다는 동화책도 수십 권이다. 성공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손님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하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X까!

 나는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찬양해 마지않는 '긍정'을 싫어한다. 성공의 비결이 긍정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을 무조건적으로 믿었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만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긍정을 '까는' 것이 곧 내가 부정을 대안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맹목적인' 긍정을 혐오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긍정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맹목적인 추종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단지 균형을 잡고 싶을 뿐이다.



 위의 사진에서 물은 '반밖에 없는걸까?' 아님 '반이나 있는걸까?' 정답은 그냥 반이 있는거다. 물론 이 상황에서 반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것보다는 반이나 있다고 긍정하는 것이 낫다. 이 정도의 긍정은 애교로 봐준다. 적어도 물이 반이 남아있다는 객관적 사실은 인지하고 있으니까.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조금 더 낫게 바라보는 정도의 긍정이 내가 생각하는 긍정의 마지노선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당신은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예고도 없이 해고를 당했다. 그런 당신에게 사회는 말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또다른 기회다!'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등등,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무엇인가를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AT&T사는 2년 동안 1만 5천명을 정리 해고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한 날 샌프란시스코 직원들을 '성공1994'라는 동기 유발 행사에 보냈다. 행사의 주연급 연사였던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이건 도를 넘어선 긍정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해고를 당한 것이 전부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것 역시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나 긍정은 다 된다고 속삭이고 있다. 전부 나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이겨내고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안 되면 전부 나의 잘못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 불평, 불만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긍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조차 가리게 만든다면, 그러한 긍정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자기최면, 마인드 컨트롤, 생각 조절 등, 자기계발에서 제시하는 강요되고 훈련된 긍정적 사고는 사실 고의적인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그것은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참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거나 검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긍정적 사고는 외부로 향해 있던 경계의 방향을 내부로 돌린 것에 불과하다. 사고가 나거나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그런 부정적인 예상 자체를 경계해 쉼 없이 교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맹수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들판에서 맹수들을 경계하지 말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경계해 없애라고 촉구하는 꼴이다.


 역사학자 도널드 마이어가 지적했듯이 긍정적 사고는 기분을 고양시켜 주는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불가능에 대한 전망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통제에 반발하는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감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짐에 불과하다. 구명구라도 되는 듯 여기지만 긍정적인 '생각 통제' 노력은 잠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고, 중요한 정보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 사고도, 부정적 사고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다. 비판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회의를 품는 것이다. 어떤 사태에 처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감정의 안경을 쓰고 상황을 왜곡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않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 사고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과관계, 개연성, 우연이라는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만을 한다고 해서 돈이 나에게 끌려오지 않는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만을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나아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나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그들 자체의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긍정적 사고가 상황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개선을 위한 노력조차 가리게 만든다면, 그러한 긍정적 사고는 결국 나의 발등을 찍게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긍정적 사고를 강요한다면, 그것이 나의 객관적인 시선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가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긍정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참고도서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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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1%의 우연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1900년대 초 심리학 역사에 길이 남을 실험을 시작했다. 터먼은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표준형 IQ검사인 스탠퍼드-비네을 만든 학자다. 터먼은 IQ가 135이상인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아이들 1500명의 삶을 1928년부터 기록해 나갔다. 각 아이들마다 서류철을 하나씩 만들어 그 안에 아이들 삶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기록했다. 아이들의 건강, 성품, 관심사, 집안의 관계, 심지어 부모가 소유한 책(평균 300권) 등등, 기록은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선택된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정기적으로 그들의 상태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성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달 수입은 얼마인지, 결혼 생활은 행복한지 등등이 체크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삶을 그리도 자세히 조사하고 기록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터먼은 왜 그런 실험을 실시했을까?


 터먼은 IQ의 신봉자였으며 날카로운 이성이 인간이 소유한 가장 가치있는 특성이며, 인생의 경로는 예측 가능한 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증명하고자 실험을 실시한 것이다. 그는 지능이 삶의 성공을 좌우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라고 확신했다. 만약 그의 믿음이 옳다면 실험대상이 된 아이들이 그것을 증명해 줄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인생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는 터먼의 꿈은 날아가버렸다.


 아이들 중에는 헐리웃 스타도 있었고 학자도 있었으며 유명한 언론인도 있었다. 터먼의 아이들은 열 명 중  한명 꼴로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벨상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재들의 수입은 미국인 평균보다 높았으며 건강 상태도 평균 이상이었고 자살률은 평균보다 낮았다. 그러나 그들에 관한 서류들에는 심리학자들의 기대에 맞지 않는 운명들이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었다. 좌절하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했다. 경찰, 타일공, 청소부 등 영재성이 특별히 요구되지 않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능은 결코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타고난 지능이 아니라 노력이다!' 라는 감동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고 싶지만, 그것 역시 개뿔! 헛소리다! 에디슨의 명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를 두고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99%의 노력도 1%의 영감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애초부터 물이 없는 곳을 죽어라 판다고 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1%의 영감'을 무엇으로 해석하든지 간에 에디슨 명언의 진짜 의미는 이렇다고 생각한다. '99% 노력의 결과는 1% 영감에 의해 결정된다.'





 루이스 터먼의 사례를 가지고 에디슨의 명언을 살짝 바꿔보겠다. '인생은 1%의 우연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의 인생은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99%만큼 노력해도 그 결과는 1%의 우연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좀 우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의 노력이 우연이라는 녀석때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거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전에 한 가지 짚고 가자. 위의 터먼의 사례를 보고 터먼이 지능에만 국한해서 연구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 캐럴 톰린슨과 제시카 고멜은 이런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번 터먼의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에 들어갔다. 그들은 집안, 유년시절, 인격, 목표 등 성공을 예측하는 13가지 기준을 마련했다. 지능이 아니라면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을 종합해서 인생의 경로를 예측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삶의 목표, 사교성 등이 어느 정도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극히 제한적이었다. 결론적으로 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했던 터먼의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이 머나먼 삼국시대 어느 산골 마을에서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그 시대에는 옆 마을에 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대부분의 삶이 그 마을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을에서 지냈을 것이다.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난 나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무꾼이 되어 생계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이 마을에서 최고의 나무꾼이 될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삶의 반경이 극히 제한적인만큼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나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예상가능하며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우연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고 하자. 가령 자신이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고 길에서 만난다면 놀라지 않겠지만, 약속하지 않은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놀라워 한다.


 이제는 자신이 지금의 시대에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전세계 1등 회사가 될 꿈에 부풀어 있다. 그 꿈을 위해 하루 18시간씩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경쟁사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세계 글로벌 회사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었다. 고전을 거듭하면서도 치열하게 노력해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정책이 바뀌어 그동안 받아왔던 혜택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재료를 수입해 오던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재료 수입에 큰 차질이 생겼다. 거기다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 대출도 더이상 어려워졌다. 결국 회사는 파산했다.


 회사 파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뭘까? 물론 알 수 없다.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너무 많은 우연들(의도하지 않은 일)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우연들 때문에 노력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거 나무꾼의 삶과 지금의 삶에서 우연의 역할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당구대 위에 공들이 굴러다니지만 각각의 공별로 구역이 제한되어 있다. 자신에게 할당된 구역만 굴러다닐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공과 만나는 일(우연)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삶은 이와 비슷했다. 자신의 삶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의 모습이 예측 가능했다. 어디서 태어나는지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직업의 종류도 제한되었고, 결혼 상대자의 물망에 올릴 수 있는 신붓감 또는 신랑감의 수도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우연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적었고,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위의 당구대에는 경계가 없다. 모든 공들은 어디든지 굴러갈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공과 만나는 일(우연)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지금의 삶은 이와 비슷하다. 이제는 전세계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고, 전세계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노동 구조도 변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기업이 지구 반대편 경쟁기업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다. 사스나 에이즈 같은 전에 없던 전염병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즉각적으로 전세계 나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경계가 허물어진 지구 위를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며 저마다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다. 수십 년 전 헤어진 친구를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다 '우연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연결되는만큼 더 많은 우연들이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 이제는 한 사람의 삶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또한 노력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복잡성과 우연이 증가하는만큼 가능성(기회)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골마을에 태어났다고 해서 한평생 그곳에서 살 필요도 없고,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해서 농부가 될 필요도 없다. 한국에 태어났다고 한국에서만 살 필요도 없다. 일례로 현재 나의 가장 큰 수입원은 '프레지(Prezi)'라는 툴을 사용한 프레젠테이션 제작 서비스이다. 지구 반대편 헝가리의 한 벤처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이 나에게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재능과 노력이 있었지만 먼저 '프레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우리의 인생은 1%의 우연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1% 우연이 99% 노력의 결과를 결정한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우연의 역할이 커져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99%의 노력을 쏟는만큼 그 노력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우연에 열려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러한 변화로 인해 나에게 다가올 우연, 그리고 그 우연과 함께 찾아올 기회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살피는 것이 지금의 시대에서 우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연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흥미진지하다. 


<참고도서 - '우연의 법칙' 슈테판 클라인, 웅진 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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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법칙'은 사기다!



법칙 :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필연적 불변의 관계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원인에 항상 같은 결과가 따라오면 우리는 그것을 법칙이라고 부른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지구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땅으로 떨어진다. 잘생긴 사람이 떨어뜨린다고 해서 물건이 하늘로 솟구치지는 않는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 그것이 바로 '법칙'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하는 '성공의 법칙'은 어떨까? 성공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할까? 성공학을 전파하는 수많은 자기계발 강사들이 침이 튀도록 법칙이 존재한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자. 성공의 법칙에서 원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력'이다. 물론 수많은 원인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노력이다. '간절히 꿈꾸고 노력하면 다 된다!' 이것이 성공의 법칙의 핵심이며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메시지다.


 그렇다면 노력이라는 '원인'과 성공이라는 '결과' 사이에 과연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자. 그러한 관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법칙이고, 아니면 그것은 법칙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해보니 그들의 성공 원인은 한결같이 노력이었다. 따라서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논리는 아주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성공이 주어지는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성공한 사람들만을 보고 그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그들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성공의 법칙'이 진짜 법칙이 되려면 위 표의 나머지 영역 모두에서도 법칙이 성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법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기다. 물론 검증은 불가능하다.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꼬리표가 붙으니까. 


 나는 성공에 있어 노력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확신한다. 노력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도 확신한다. 내가 굳이 이렇게 태클을 거는 이유는 성공의 법칙을 전파하는 강사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의 법칙을 확신한다면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야가 좁거나, 진짜 사기꾼이거나. 


 만약 자신이 치열한 노력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거나, 또는 그러한 사람들만을 만나왔다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성공의 법칙을 좋은 의미에서 나누고 싶어할 것이다. 그들의 선한 의도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부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명성을 위해 성공의 법칙을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히 사기꾼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천만의 말씀! 현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긍정은 위험하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면 낭떠러지가 눈앞에 있는데 간절히 꿈꾸면 건널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게 양 극단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반대쪽에 서야하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반대 극단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쪽에 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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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비법을 알려 드립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왜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할까
?’일
것이다. 나 역시도 왜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까를 궁금해 했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성공학 서적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
역시
무지하게 궁금하게 여기는 것 같다
. 노력이 부족해서일까
?
직장인들이 자기계발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받으며 노력 하는걸
보면 아닌 것 같다
. 방법을 몰라서일까?
그럴듯한 성공의 비밀
을 알려줄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그저 그런 책을 봐도

별볼일 없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운이 나빠서일까?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걸 보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참으
로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다수의 사람
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하면서
성공의 의미조차
정의하지 않은 것이었다
.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준이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기준만
이 존재하는 객관식 시험에서는 
언제나 1등은 한 명이다.


왜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할까?’라는 질문은 왜 객관식 시험에서는
1등이 한 명뿐일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잘못된 질문이었던 것이다
. 질문을 던지기 전에
성공의 의미와 기준부터 정해야 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천편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승자는 언제나 소수다. 다양한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세상에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고 거기에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

 
세계일주를 다니면서 참으로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잠깐의 휴가로
떠났던 여행이 시발점이
되어 평생 전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던 호주 아저씨
, 자신이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더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몇년째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자비로 아프리카에 오신 네델란드 아저씨. 그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왜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할까?’, ‘어떻게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질문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나에게는 무엇이 성공일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답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실패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결국 그들이 이겼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도 불행한 성공한
실패자보다 사회적 기준에는 미달했지만
자신만의 기준에는 도달한
실패한 성공자
승리자다. 이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보자.
나에게는 무엇이 성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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