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이 대박난 이유




 몇 년전 세상은 시크릿의 열풍에 휩싸였다. 전 세계적으로 1억부가 넘게 팔리고 국내에서도 수백만권이 팔린, 한마디로 초울트라 수퍼 대박 책이었다. 시크릿이 이렇게 초대박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세상 일이 단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만 일어나지는 않기에 쉽게 단정 지을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핵심적인 원인은 있다.

 일단 내용이 좋아서 대박을 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시크릿의 열풍을 보면서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인 론다 번은 정말 뛰어난 장사꾼이자 프로듀서다. 물론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시크릿의 진실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내용은 패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도대체 시크릿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 잡을수 있었느냐'이다. 론다 번이 인간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시크릿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아래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A: "이 제품을 사용하면 여러분은 썰기와 다지기 등을 빛의 속도로 할 수 있습니다."
B: "이 제품은 썰기와 다지기 등을 빛의 속도로 해냅니다."


 위의 문장은 동일한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 문구다. 과연 둘 중에 어떤 문장이 더 효과가 있을까?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행해진 실험에서 B문장이 훨씬 효과가 높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A문장은 내가 직접 썰기와 다지기를 해야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반면 B문장은 내가 아니라 제품이 썰기와 다지기를 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B문장에 더 끌린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최소 노력의 방안을 찾도록 설계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최소량만을 소비하고자 하는 본능적 성향은 오랜 시간 진화를 거쳐 우리의 DNA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초기 인류에게 개인의 에너지(힘)를 보존하는 것은 생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인이었다. 언제 먼 길을 떠날지, 언제 포식자와 싸움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와 같은 상황을 대비해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다. 또한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나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은 환경이 아니었기에,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해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그리고 그러한 본능적 성향이 여전히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있어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가필드 고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본능적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안에 자동적으로 끌린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은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원시적 뇌가 생존에 옳다고 <느끼는> 것을 우리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우리의 기호는 절대 논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원초적이며 본능적이다.

 '시크릿'이 대박을 친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이것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최소 노력의 방안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완벽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면 되는 것보다 쉬운 것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만으로 내 인생을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더 달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시크릿이 대박을 친 이유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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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뇌를 알라!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진짜도 가짜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구분하는 것뿐이다. 뇌는 귀중한 자원들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분류하고, 자원들을 통해 감각 경험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알아낸 후에야 그 감각 경험에 대한 의식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즉,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은, 사실 대뇌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수들이 간결하게 추려 내고 거기에 설명을 단 요약본이다."                                                         -'뇌의 거짓말' 중에서 


 인간의 뇌는 경이롭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뇌 덕분이다. 성인의 뇌에는 대략 1조개의 뉴런들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뉴런들은 다른 1만 개의 뉴런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뇌에서 1초당 만들어지는 신호의 수는 1년간 전세계 국제 전화망을 오가는 단어수보다 1,000배 더 많다. 이쯤되면 뉴런이 뭔지는 몰라도 뇌의 경이로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뇌의 놀라운 성능에 대해 많은 부분들이 밝혀지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기술들을 총 동원해도 뇌처럼 작동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뇌는 초울트라 수퍼 캡짱스런 컴퓨터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그만큼의 부작용도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작용은 오히려 뇌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시에 세 개의 뇌를 사용한다. 오랜 시간 진화를 거치면서 뇌는 세 가지 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첫번째는 바로 '파충류의 뇌'(뇌간)다. 다른 파충류의 뇌와 다를 것이 없는 이 뇌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사냥을 하여 먹이를 구하고, 구애를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며 영역을 지키는 등의 동물적 본능을 주관한다. 인간 역시 이러한 본능의 지배를 받고 있다.

두번째는 '포유류의 뇌'(변연계)다. 이 부분 역시 파충류의 뇌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이지 않다. 그러나 파충류는 못하지만 포유류는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한다. 새로운 행동을 배우고 가족들을 돌보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 등을 수행한다. 파충류의 뇌는 무조건적인 반사를 통해 작동하지만 포유류의 뇌는 감정의 소용돌이치는 힘에 의해 작동한다. 

세번째는 바로 '인간의 뇌'(대뇌피질, 전전두엽)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것도 '인간의 뇌'의 활약 덕분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오류를 저지른다. 
 

 



 경제학자 마리앤 버트랜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한 금융기관의 이름으로 단기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안내장을 5만 명에게 보냈는데, 그 이자율은 월 3.25%에서 11.75% 사이에서 무작위로 선택되었고, 각 안내장마다 달랐다. 대출 조건을 명시하고 그와 동시에 판촉 경품과 같은 각종 마케팅 기법들이 무작위로 적용되었다. 즉 어떤 마케팅 기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남성 대출 신청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마케팅 기법은 안내장 모퉁이에 게재된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이었다. 이때 대출 신청 수는 월 이자율을 4.5% 내렸을 때만큼이나 증가했다.

 과연 남성 대출 신청자들은 어떤 뇌를 통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아마 스스로는 의식적인 사고를 통해 대출 조건을 꼼꼼히 검토해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에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파충류의 뇌'가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결정을 의식적으로 합리화한 것이다. (물론 모든 남성들이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영향을 받는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이러한 영향(본능)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남성은 없다.)

 우리가 뇌의 경이적인 성능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룩하고 혜택을 본 것만큼 다른 부분에 있어 댓가를 치르고 있다. 매번 같은 실수와 오류를 반복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실수와 오류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하지만 노력한다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것처럼 나 자신(뇌)에 대해 더 잘 인식한다면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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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원시인이다 2/2

 인간은 누구나 공통적인 본능을 타고난다. 지난 수십년간의 연구 결과 본능에 대한
많은 것들이 밝혀졌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의식적인 생각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본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본능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본능은 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진화의 과정에 있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했던,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중요했던 것은 단 두가지다. 바로 '생존'과 '번식'. 
어떻게든 생존해야만 했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번식을
해야만 했다. 단순화 시키면 인간의 마음은 생존과 번식, 이 두가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인간 진화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백만년 동안 위와 같은 원시시대의 삶을 살았다.
지금처럼 현대화된 시대의 삶은 진화 역사의 0.1%도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마음은
과거 원시시대의 삶에 맞추어 진화를 한 것이다.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 마음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과거 원시시대의 삶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은 전망과 높은 위치가 제공하는 경관을 선호한다. 칸막이와
벽, 나무들은 우리의 본능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것들이 은신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포식자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주변에 포식자가
없더라도 우리는 특히 등 뒤와 머리 위쪽에 어느 정도의 보호벽을 둘 때 본능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레스토랑에서 창가 쪽과 벽쪽의 자리가 먼저 찰까? 아니면 레스토랑 중앙에 있는
좌석이 먼저 찰까?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언제나 창가 쪽이나 가장자리의 벽면에
밀착된 테이블이 중앙에 있는 테이블보다 먼저 선택 받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본능
적으로 무언가(예를 들어 포식자)가 다가오는 것을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전망이
확보되는 창가쪽이나, 한쪽 면이라도 보호되는 공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본능이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우리는 그것을 좋다고 느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 본능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번식(사랑)을 살펴보면 남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들어난다.
간단히 
말하면 남성에게 있어 여성은 번식자원이다. 나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본능적으로 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을 선호한다. 
반면 여성에게 있어 남성은 생존자원이다. 자신과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음식, 집 등)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경제력이 뛰어난 남성(나이가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을
선호한다.


 남성은 본능적으로 바람을 핀다.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000명의 여성과 섹스를 하면 1000명의 자신의
아이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여성은 아무리 많은 남성과 섹스를 해도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수가 한정적이다. 정자는 아주 싸지만 난자는 아주 비싸다.
그래서 섹스를
하는데 있어 여성은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이 밖에도 인간의 본능에 관한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본능이 행동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본능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다. 우리는 섹스를 하고 싶다고
무턱대고 강간을 하지 
않는다. 이성, 사회제도 등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행동의 
출발점은 본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본능적인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자연스러운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라고 해서 바람
피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성향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원시인이다. 행크 데이비스가 쓴 '양복을 입은 원시인'이라는 책 
제목처럼 
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원시시대에 맞춰져 있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저지르는 실수는 과거에 적합하게 설계된 마음이 현대의 환경에
적합하게 
반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 등이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어 인간의 마음을 혼란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등을 기반으로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능케
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본능은 변하지 않는데, 과연 안다고 해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완벽하게 극복할 수는 없지만 조절할 수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이성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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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원시인이다 1/2


인간은 과연 백지 상태로 태어날까?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무엇인가가 기록된 채로 태어날까?

 과거에는 인간은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빈 서판(Blank Slate)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인간 행동의 모든 내용(정서, 열정, 동경, 욕망,
신념, 태도 등)은 출생 후 각자의 삶에 추가된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난 이후의 교육을 통해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사람들의 성격, 자질, 재능 등은 천차만별이다.
개인을 넘어 나라별로 살펴봐도 그들의 문화 역시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귀고리와 반지를 끼지만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은 코에 뼈를 끼우고 입술에
고리를 끼워넣는다. 이슬람 여성들은 머리와 얼굴을 베일로 가리는 반면
미국 여성들은 비키니를 입고 다니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태어난 이후의 교육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문화(교육)에 의해 인간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믿었던 과거의
문화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증거들을 찾기 위해 전세계를
조사하며 다녔다. 가령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헐리웃 영화와 TV를 접하지 못한
원시 종족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겪고 있는 질투, 갈등, 경쟁과 같은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전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는 그러한 유토피아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성(Sexuality)를 공유하고 자유연애를 즐기며 경쟁, 강간,
싸움, 살인이 없는 평화로운 사람들이 거주하는 낙원을 발견한 것이다.
미드의 발견은 큰 이슈가 되었다.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나며,
태어난 이후에 행동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그들의 주장은 힘을 
얻었다. 

 그러나 더 정밀한 조사 결과 미드의 보고는 허위로 밝혀졌다. 후속 연구의
결과 미드가 유토피아적으로 묘사했던 사모아 원주민들은 매우 경쟁적일 뿐만
아니라 살인 및 강간의 비율에 있어서도 미국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사모아 남성들은 강한 성적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수십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이제 우리에게 범문화적으로 인류의
보편성(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인종과 문화를 막론하고
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갖고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면 태어나는
순간 특정 자극에 대해 공통된 생각과 의식, 반응, 감정 등을 갖고 태어난다.

 예를 들어 전세계 문화별로 미의 기준은 다르다. 하지만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은 공통적이다. 남성의 성적 질투는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특성이며 지금까지 조사된 다양한 문화에서 배우자 살해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려움, 분노, 기쁨과 같은 감정 표현은
TV나 영화를 접해보지 못한 문화 속에 사는 원주민들에 의해서도 인식된다.
수백 년 전 백인들에 의해 새롭게 밝혀진 것으로 생각됐던 사랑이라는 
감정조차도 범문화적인 보편성을 보인다.


 인간이 빈 서판으로 태어나지 않고 보편적이며 공통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점이다. 만약 인간이 백지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헐리웃 영화와 TV로 인해 사람들의 폭력성이 생겨났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반대다. 경쟁심과 폭력성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 감정들로 인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와 TV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종과 국가의 차이를 넘어 인간은 공통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생각, 의식, 반응 등이 어떻게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은 진화의 산물이다. 수백 만년에 걸친 생존경쟁에서 몸의 각 
부분들이 진화하였고, 우리는 그 진화의 결과물로서 현재의 몸을 전해받았다.
우리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후손이기에 모두 동일한 몸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부색은 다를지라도 몸을 보호하는 피부가 없는 사람은 없다. 
팔과 다리의 길이는 다를지라도 각각 두 개씩 가지고 태어난다. 


나는 먼 미래에 더욱 중요한 연구 영역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인데, 그 토대는, 정신적 힘과
능력이 단계적이고 필연적으로 획득된다는 사실이다.
                                                                     -찰스 다윈, 1859 

 인간 진화의 비밀을 밝힌 찰스 다윈은 위와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즉, 인간의 몸이 진화했듯이 인간의 마음 역시 진화했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그리고 최근 수십 년간의 연구는 다윈의 추측이 맞았음을 밝혀냈다. 인간의
몸처럼 인간의 마음 역시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들의 집합체를
본능으로서 가지고 태어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두뇌의 실제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두뇌는 우리 몸의 일부다. 따라서 마음
역시 진화하였고, 그 결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인 마음(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빈 서판으로 태어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결론이 났다. 인간은 빈 서판이 아닌 보편적인 마음(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현재의 쟁점은 '과연 어디까지가 본능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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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정말 어려운 걸까?



 우리 모두는 변화를 꿈꾼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변화를 원치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듯 하다.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변화는 필수다. 누군가는
더 날씬한 몸매를 가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시도한다. 또다른 누군가는 자신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매일매일 실천을 시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화는 실패로 끝난다. 대부분의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새벽 영어공부는 작심삼일로 끝난다. 새해에 세운
거창한 계획은 한 두달만 지나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도대체
왜 대부분의 변화는 실패로 끝날까? 변화란 원래부터 어려운걸까?
(나 역시도 매주 한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겠다는 결심을
잊은지 오래다ㅠㅠ)


 '스위치'의 저자인 칩 히스와 댄 히스는 변화가 항상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결혼이나 출산과 같이 엄청난 변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만 보아도 모든 변화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 삶에서 대부분의 변화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에 대한 관점과 방법을 바꾼다면 변화를 '조금 더 쉽게'
만들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변화를 '쉽게' 만들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없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조금 더 쉽게' 만드는 것만
해도 어딘가?)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하나의 방법만을 취해서는
안된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기수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환경'을 조성하라!

 


 저자는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나선 헤이트의 '행복의 가설'에서
소개된 '코끼리와 기수' 비유를 사용해서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의 감성적 측면이 코끼리라면 이성적 측면은 거기에 올라탄
기수이다. 코끼리 위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에
리더로 보인다. 그러나 기수의 통제력은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코끼리와 기수의 의견이 불일치 할 때면 항상 코끼리가 이긴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위해 이성(기수)적으로는 눈앞에 있는 초코쿠키를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코끼리)은
초코쿠키의 달콤함을 떠올리며 먹으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몇분간의 사투 끝에 초코쿠키를 집어든다. 
코끼리가 이긴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매일 일어나는 싸움이다.

 변화의 방향은 기수가 쥐고 있다면 변화의 원동력(에너지)는 코끼리가
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위해서는 이성적 측면(기수)뿐만 아니라
감성적 측면(코끼리)에도 호소해야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 컨텐츠는 감성적 측면, 즉 동기부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만 같고, 하고 싶은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변화를
위한 에너지는 충분히 생겨났고, 코끼리를 움직이도록 호소
하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실천의 단계에 이르는 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라고 하는데, 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력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하라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변화를 위한 에너지는 생겨났는데 방향을 잃고 빙빙 돌기만
하는 꼴이다. 자기계발을 위한 시도는 대부분 이렇게 끝이 난다.

 코끼리에게 감정을 부여함과 동시에 기수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명확한' 방향이다. 단순히
'열정을 가지고 매일매일 노력해라!'와 같은 메시지는 명확하지
않다.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는 기수를 지치게 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게 만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기계발 컨텐츠는 이와 같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본형의 '필살기'와 
같은 책이 한계를 뛰어 넘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수와 코끼리 모두에게 호소해야 한다.
기수에게만 호소하면 이해는 하되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코끼리에게만 호소하면 움직이되 방향을 잃고 헤맬 것이다.
기수와 코끼리가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이 책의
통찰력이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바로 '환경'이다.


 우리가 그동안 변화에서 간과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환경'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물론 때때로 인간은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협하고 합리화하는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만큼 변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사소한 환경의 변화에
큰 행동의 변화을 일으킨다. 

 책의 사례로 등장하는 한 여대생은 졸업파티에 드레스를 입고
가기 위해 살을 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온갖 다이어트 방법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시도한 아주 사소한
환경의 변화를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 드레스를 입고 졸업파티에
갈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안에 있는 모든 그릇을 작은 사이즈로 바꾼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큰 그릇에 담으면 많이 먹고, 작은 그릇에
담으면 적게 먹는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지만 대부분 어떤 그릇에 먹느냐에 큰 영향을 받는다.

 코끼리와 기수에 호소하더라도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변화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코끼리와 기수에 호소하지
못하더라도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변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환경의 영향이 큰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진짜 어렵다. 하지만 생산성 측면에서 봤을 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에게는 진짜 중요하다. 그래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나는 같이 사는 친구와 집 안에 텐트를 쳐놓고 그 안에서 잔다.
집 안이지만 뭔가 야생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산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안에 있으니
그 곳에서 탈출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최근 들어 텐트
밖에서 잔다. 그리고 자기 전에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샤워를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기 더 힘드니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환경을
바꾸니 조금의 효과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덕분에 오늘
아침에 그동안 미뤄왔던 글을 이렇게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기수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환경'을 조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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