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 - 20대를 위한 청춘토크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보고 들고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인생을 가장 본질적으로,

올바르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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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 '젊음의 5기'......X바! X까!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젊음의 5기'라는 광고다. 이 시대의 젊음들에게 꿈을 펼치라는 메시지와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5기(용기, 패기, 혈기, 호기, 끈기)를 말하고 있다.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광고다. 대충 검색해봐도 이 광고를 본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용기를 얻었다.','자신감이 생겼다.'등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광고를 본 나의 반응은......분노와 함께 'X바! X까!'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얼마나 꿈을 못 펼치고 있으면 '꿈을 펼쳐라'라는 광고가 나왔겠는가. '과소비 하지마라','너무 놀지마라'는 광고가 아니라...... 하지만 좋다. 그건 지금 시대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니까 넘어간다 쳐도, 그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국가가 내놓은 것이 고작 '젊음의 5기'다. 이건 명백히 국가가 청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실업)를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시대의 젊음들이 꿈(안타깝게도 이제는 꿈이 취업과 동일어가 되어 버렸다)을 이루지 못한 것은 개개인이 5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니 더 열심히 노력해라.','열심히만 하면 니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룰수 있다.' 하지만 실업이 과연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실업은 최근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의 주요 원인이 되었을 만큼 중대한 사회적 문제다. '젊음의 5기' 광고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얼마나 성의없게 대응하고 있는지, 청년 실업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광고를 보고 용기를 얻는 것은 좋다. 우리에겐 희망과 용기같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래!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거야! 이제부터 '5기'를 갖고 좀 더 노력해야지!' 그러나 상위 1%만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고(그래야만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머지 99%는 어쩔수 없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과연 '젊음의 5기'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지금 상황에서 단기적이고 획기적인 해결책은 없다. 현실을 들여다 볼수록 더 암울해진다. 하지만 적어도 실패의 모든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개개인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고 있다. 이 광고를 본 어른들은 '거봐! 너희들의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거야!'라고 질타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자기자신에게는 조금 더 관대해지기를 바란다. 


 소수만이 승자가 될 수 있는 구조속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게 더 많을거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이 전부다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 내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노력해 가자.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젊음의 5기'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ㅋ


-참고도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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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강연] 개그콘서트가 우울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1. 나의 길/강연 2012.07.18 18:26



방황하는 직장인들에게 강추(강성찬 추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www.wisdo.me/shop/goods/goods_view.php?goodsno=235&category=00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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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명언 = 맞지만 쓸모없는 말들


간절히 꿈꾸고 노력해라!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크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라!

용기를 가지고 모험에 뛰어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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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에서 말하는 명언들은 셀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저러한 말들을 되뇌이며 희망에 차오른다. 그러나 자기계발에서 이야기하는 말들은, 맞지만 쓸모없는 말들이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에게는 사실상 쓸모가 없다.


간절히 꿈꾼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뭘까? 어느 정도로 간절해야 간절히 꿈꿨다고 할 수 있을까?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는데, 도대체 그 끝의 정의는 뭘까? 안되더라도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 걸까?......어! 그런데 또다른 격언은 '때로는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고,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말의 진짜 의미는 텍스트 그 자체의 뜻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는 상황, 즉 맥락에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동일한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가령 '사랑해'라는 말도 친구에게 할 때와 애인에게 할 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말을 이해할 때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을 토대로 해서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유추한다. 그만큼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 맥락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기계발에서 말하는 명언은 맥락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문장으로만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에 맥락이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말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져서 해석이 이루어질 때 생긴다. 가령 내가 '크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명언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지금 나의 상황에 비추어 나만의 기준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크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뭘까? 시간의 경우는 10년, 돈의 경우는 10억이면 내가 크게 생각한 걸까? 나에게 '과감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는 뭘까? 길에서 지나가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연락처를 물어보는 정도면 나에게 과감한 걸까?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는 것이 나에게 과감한 걸까?


물론 정답은 없다. 그것은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당사자가 어떤 맥락에 있고, 어떤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즉, 같은 말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 가치관, 세계관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위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는 말과 '때로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둘 다 옳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었고,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을 배제한채 텍스트만 놓고 보았기 때문에 서로 대치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나는 자기계발 명언들은 맞지만 쓸모없는 말들이라고 했다. 아무리 근사하고 좋은 말이라도 텍스트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다. 그러한 말들이 쓸모가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통해 명언의 의미를 해석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자기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의 세계관을 모른다면, 그 어떤 명언도 쓸모가 없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명언도 쓸모없는 말에 불과하다. 그러니 명언들을 찾아헤매기 앞서, 자기 자신을 좀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명언들을 좀 더 쓸모있게 활용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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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 개뿔!


 긍정은 좋은 것이다. 여기에 반대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긍정은 좋은 것으로, 부정은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 서점에서 '긍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300여권의 책이 검색된다. 그중 절반 가량이 자기계발서이다. 긍정적인 아이로 키워준다는 동화책도 수십 권이다. 성공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손님이 바로 긍정의 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하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X까!

 나는 우리 사회가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찬양해 마지않는 '긍정'을 싫어한다. 성공의 비결이 긍정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을 무조건적으로 믿었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만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긍정을 '까는' 것이 곧 내가 부정을 대안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맹목적인' 긍정을 혐오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긍정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맹목적인 추종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단지 균형을 잡고 싶을 뿐이다.



 위의 사진에서 물은 '반밖에 없는걸까?' 아님 '반이나 있는걸까?' 정답은 그냥 반이 있는거다. 물론 이 상황에서 반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것보다는 반이나 있다고 긍정하는 것이 낫다. 이 정도의 긍정은 애교로 봐준다. 적어도 물이 반이 남아있다는 객관적 사실은 인지하고 있으니까. 상황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조금 더 낫게 바라보는 정도의 긍정이 내가 생각하는 긍정의 마지노선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당신은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예고도 없이 해고를 당했다. 그런 당신에게 사회는 말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또다른 기회다!'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여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등등,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무엇인가를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AT&T사는 2년 동안 1만 5천명을 정리 해고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한 날 샌프란시스코 직원들을 '성공1994'라는 동기 유발 행사에 보냈다. 행사의 주연급 연사였던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이건 도를 넘어선 긍정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해고를 당한 것이 전부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일자리를 못 구하는 것 역시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나 긍정은 다 된다고 속삭이고 있다. 전부 나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이겨내고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안 되면 전부 나의 잘못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 불평, 불만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긍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현실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조차 가리게 만든다면, 그러한 긍정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자기최면, 마인드 컨트롤, 생각 조절 등, 자기계발에서 제시하는 강요되고 훈련된 긍정적 사고는 사실 고의적인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그것은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참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통제하거나 검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긍정적 사고는 외부로 향해 있던 경계의 방향을 내부로 돌린 것에 불과하다. 사고가 나거나 일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그런 부정적인 예상 자체를 경계해 쉼 없이 교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맹수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들판에서 맹수들을 경계하지 말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경계해 없애라고 촉구하는 꼴이다.


 역사학자 도널드 마이어가 지적했듯이 긍정적 사고는 기분을 고양시켜 주는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불가능에 대한 전망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통제에 반발하는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감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짐에 불과하다. 구명구라도 되는 듯 여기지만 긍정적인 '생각 통제' 노력은 잠재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고, 중요한 정보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적 사고도, 부정적 사고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다. 비판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회의를 품는 것이다. 어떤 사태에 처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감정의 안경을 쓰고 상황을 왜곡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지 않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 사고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과관계, 개연성, 우연이라는 자체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만을 한다고 해서 돈이 나에게 끌려오지 않는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만을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나아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나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그들 자체의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인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긍정적 사고가 상황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과 개선을 위한 노력조차 가리게 만든다면, 그러한 긍정적 사고는 결국 나의 발등을 찍게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당신에게 긍정적 사고를 강요한다면, 그것이 나의 객관적인 시선과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가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것이 긍정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참고도서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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